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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Shien/Adult Career Story

[쏀의 진로] 근래의 부모님과의 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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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2살 때, 초등학교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우리 가족 모두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 아무 연고 없이, 그저 아버지의 직장이 그곳에 있어서 가족들이 모두 갔다.

아버지는 주재원이 아닌, 현지 직장에 다니셨었고, 받는 급여는 굉장히 적었다. 저렴한 중국 물가여서, 그나마 네 식구가 버텼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가족들끼리 더 뭉쳤었고,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인 바깥 환경의 영향으로 유달리 더 서로 의지했던 것 같다.

 

어릴 적의 기억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말은 나에게 절대적이었고, 내 세상의 전부였다.

예쁨을 받으려고, 자의는 지운 채 부모님의 가치관을 따랐다.

옆에서 동생이 혼나는 모습을 보고, 간접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말 등도 학습하기도 했다.

 

대학 생활과 사회경험

대학진학 후,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져서 살았다.

회사 생활 또한 자취를 했다.

그때, 부모님의 말씀이 모두 옳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또래에 비해서는 굉장히 늦은 자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의견과 내 생각이 많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직업의 고민과 현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온몸으로 답습해온 부모님의 '효'에 대한 가르침은 쉽게 독립하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자랑이 일종의 취미였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소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한국의 대기업 중국 지사에 취업했을 때, 아버지는 내 명함을 지인들에게 모두 나눠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에 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 시절 주변 지인들이 말하는 "넌 중국어 잘하니까 취업에 문제없겠다"라는 말에 너무 안일해 있어서, 취업이 되는대로 회사에 들어간 상황은 나의 회사 생활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일이 많이 일어났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회사의 미래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부모님의 자랑거리로 남아있기 위해 나에게도 맞지 않는 환경에 있는 것이 옳은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다양한 경험을 통한 인지

앉아서 고민만 해서 내가 가진 혼란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무렵에, 나는 꽤나 대외활동 등의 여러 경험을 했었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만큼, 나의 성격, 성향이 파악이 되더라.

그런 상태에서 가끔 보는 부모님을 만나보면, 부모님이 당황하시는 게 보이기는 했다.

부모님은 내가 회사 생활에 집중 못 하고 여기저기 떠도는지 이해하지는 못하셨다. 매번 대화할 때면, 하나의 경험 혹은 취미를 길게 가지는 건 어떠냐하고 조언하셨다.

 

소통의 중요성과 부모님과의 대화

동생은 본인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잘 하지 않아, 부모님은 늘 모든 이야기를 하는 '착한 딸'을 좋아하셨다.

나 역시 한동안 '착한 딸' 프레임에 갇혀 이리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뭐 하나 진득하게 붙잡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뭐든 금방 쉽게 싫증 났다. 그러다 보니, 여러 수박 겉핥기 식이였던 것이 많았다.

부모님은 이 부분에 관해서 걱정과 불만을 가지셨다.

매번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이러한 주제가 나왔고, 나는 응원을 못해줄망정 조언을 해주시는 부모님의 말씀이 듣기 싫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잘 안 하고, 입을 다물게 됐다. 내 의견 등을 부모님께 내비치는 게 굉장히 미성숙했기 때문이리라.

부모님의 생각과 나에게 생기고 있던 가치관의 충돌이 거세지고 있었다.

 

매번 부모님과 만날 때마다, 냉전 같은 묘한 기운이 흘렀다.

 

부모님과의 마찰과 화해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대화하는 법, 화내는 법, 화해하는 법을 터득했다.

내가 말하는 방식이 분명히 유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하루는, 부모님과의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하던 중에, 기어코 일이 터졌다. 나도 모르는 아버지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화내셨었고, 나는 놀랐고, 영문을 몰랐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화해를 시도하는 방법으로 아버지께 다가갔었다.

  1. 상대방의 감정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2. 어떤 부분이 기분이 나빴는지 물어본다.
  3. 사과한다.
  4. 내가 했던 행동은 이러한 뜻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5. 앞으로 예민한 부분은 조심하겠다고 마무리한다.

아버지는 금방 풀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대화의 부재가 컸구나.

 

부모님의 노력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렸을 때 마냥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던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이리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식으로 변하니 그분들도 많이 혼란스러우실 것 같다.

큰 마찰이 있는 뒤로 부모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렸했다.

서로 인내하고 크게 터지는 것보다, 작은 상처를 받더라도 많이 대화를 하면서 마음속의 답답함과 응어리를 덜어내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이 보시기에 아직도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답답하게 보이실지라도, 내색 안 하시려고 노력하신다. 그리고 나에게 어떠한 강요나 조언도 하지 않으신다.

 

뭔가, 좀 더 정서적으로 독립한 느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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